무명이었던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를 200년만에 대가의 반열이 올려놓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그림 속의 여인에게 마음을 뺏기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 번 안트베르펜(Antwerpen) 왕립미술관(Koninklijk Museun voor Schone Kunsten)에서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추운 비너스’를 보고는 비너스의 눈에 맺힌 듯 아닌 듯한 눈물 때문에 마음이 설레인적은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마음이 흔들려버리기는 처음이다. (옆의 그림을 클릭해서 같이 설레여보자.)
지난 토요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Royal Cabinet of Paintings Mauritshuis)에 갔다. 하루 동안 암스테르담을 갔다오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도중에 문득 눈에 띄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예전부터 보고 싶어했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는 곳이었다. ‘아, 이 그림이 여기에 있었구나!’. 암스테르담을 가겠다는 처음의 목적은 어느 새 뒷전이 되어버리고, 떠나는 아침부터 이 소녀를 본다는 마음으로 잔뜩 부풀어 올랐다.
기대했던 것보다 약간은 작은 그림. 그 동안 크기가 꽤 큰 초상화만 봐와서일까. 생각보다 작은 그림에 잠시 놀랬다. 하지만 곧 아담한 크기의 그림이 더 부담없이 나에게 다가 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배경 속에서 나를 뒤돌아 보는 소녀. 귀를 귀울이면 말소리가 들릴 것처럼 무언가 말하는 듯한 붉은 입술과 투명한 눈동자. 그리고, 손을 내밀어 만지고 싶어질만큼 부드러워 보이는 귓볼. 정말이지, “응, 뭐라고 했어?”라고 물으면 내게 곧 대답을 해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니 이 소녀는 실제의 모델을 그린 그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베르메르는 누구를 생각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까? 자신의 첫사랑? 어렸을 때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여관에서 본 여자 손님? 아니면, 자신의 부족한 사랑을 메꾸워줄 이상형? 실제 모델이 있을 것이라도 생각했던 나에게 ‘가상’의 인물이라는 말은 이런 호기심을 더욱 자아내게 했다.
나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의 동명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인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방에 이 그림을 붙여놓고 궁금증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신만의 상상으로도 충분히 즐겁겠지만, 다른 사람, 특히 글 재주가 있는 사람의 상상을 들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작년에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DVD를 구해서 꼭 봐야겠다.
부푼 마음에 그냥 올 수 없어, 기념품 가게에서 이 그림의 (종이로 만든) 액자 하나와 엽서를 두 장 샀다. 액자는 내 방 침대 옆에 걸어두고, 엽서 한 장은 작은 액자에 넣어 연구실 책상에 올려 놓아야겠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이 소녀의 모습을 보고 나면 단숨에 가뿐해지지 않겠어?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유화, 캔버스, 45 x 39 cm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네덜란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측면으로 선 젊은 여인이 고개를 돌려 화면밖에 우리를 내다보고 있다. 젊은 여인은 황색 재킷 속에 백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고, 머리에는 백색 물감을 섞은 울트라마린 청색 터번을 썼으며, 그 위를 황색 천으로 묶어 머리 뒤로 늘어 내렸다. 여인의 왼쪽 귀에는 떨어지는 물방울 형태의 큰 진주 귀걸이가 걸려 있다. 빛의 도움으로 젊고 순수한 아가씨의 얼굴이 환히 드러난다. 살짝 열린 입에서 꼭 무슨 말인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캄 캄하게 처리된 배경으로부터 살그머니 등장한 여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관객과 극히 개인적인 만남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것이 1665년인지, 2004년인지, 또는 네덜란드에서든지, 한국에서든지, 결과는 시공을 초월해서 이뤄진다. 조금 더 바라본다면 마치 그림 속 저편, 그녀의 세계로 따라 들어가고 싶어진다. 이런 느낌은 필자만의 것만은 아닌가 보다. 베르메르의 전문가 슬래트키스의 말을 보자.
“그림 속의 여인과 감상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진기할 정도의 직접적인 만남, 또 살며시 열린 입은 아주 특별한 사건의 전개, 혹은 어떤 특정 인물을 암시하는 듯하다. 예컨대 시빌(Sibyl)이 신의 뜻을 전달한다든지, 혹은 어떤 성서적 인물이라든지.”
그림에 재현된 이 소녀가 과연 실존 인물인지, 혹자는 베르메르의 첫째 딸 마리아일 것으로도 보았지만, 그림이 그려진 1665년경 마리아는 고작 11살로서, 그림과 같이 젊은 여인의 풋풋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 그림이 1665년이 아니라, 마리아가 나이가 찬 1670년대에 그려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70년대 여인들의 초상화에서는 부드러운 살색의 미묘한 명암 처리를 예전과 같이 해 내지 못함으로 그런 추측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녀 같이 해맑은 여인의 안색에 화가는 눈동자와 양 입가에 빛의 포인트를 주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베 르메르는 젊은 여인(소녀)의 얼굴에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와 같이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재현해냈다. 이는 빛과 어둠, 또 그 중간 단계들의 뉘앙스를 항상 조심스럽게 다뤄낸 베르메르 만의 독특한 섬세함에서 결과된 것이다. 베르메르는 1660년대 중반에 밝고 어두운 살색의 여러 단계 위에 투명 안료를 덧칠함으로써 부드러운 피부의 질감을 나타낼 수 있었다.
베 르메르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2년 수집가 데스 톰베(Des Tombe)가 사망하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진주 귀걸이를 한 여인>을 암스테르담의 마우리츠후이스 미술관에 기증하면서부터였다. 이 그림은 데스 톰베가 1881년 한 경매장에서 단돈 2 굴덴(약 5천원)에 샀지만, 미술관에 기증될 때에는 40,000 굴덴으로 뛰어 올랐다. 당시 언론은 베르메르의 진가에 열광했으며, <진주 귀걸이를 한 여인>은 “홀랜드의 모나 리자”라 절찬되었다.
- 홍진경저, <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 예담, 2002년, 4월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년 10월 31일 네덜란드의 델프트에 서 출생하였다.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평가도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19세기 중반에야 겨우 진가를 인정받았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165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직업을 계승하였다. 화가로서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사제관계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653년 델프트의 화가조합에 등록되었고 같은 해에 카타리나 포르네스와 결혼하였다. 매우 둔필이었으며 현존하는 작품은 40점 정도이고 거의 소품들로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가정생활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 밖에 종교를 제재로 한 것도 있다. 불과 2점이지만 풍경화도 있으며, 《델프트풍경》(헤이그국립미술관 소장)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색조(色調)가 아주 뛰어났으며 적·청·황 등의 정묘한 대비로 그린 실내정경은 마치 개인 날 북구의 새벽 대기(大氣)를 생각나게 한다.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이 넘친다. 초기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뚜렷한 대비는 만년이 될수록 완화되었다. 그 밖에 《편지를 읽는 여성》(드레스덴미술관) 《우유 따르는 하녀》(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터번을 쓴 소녀》(헤이그국립미술관) 《레이스를 뜨는 소녀》(루브르미술관) 등이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August 30th, 2005 at 2:05 pm
지난달에 읽은 책이예요^^ 귀여워하는 후배가 막~ 뛰어오더니 “언니! 저 그 그림보고 눈물 흘렸어요!”하고 소리치더라구요~ 그 후배와 함께 책을 읽었죠.
August 30th, 2005 at 4:04 pm
아..나오자마자 사서 읽었죠. 주말내내 조용하신가 싶더니,미술관을 다녀오셨군요.
이 그림을 직접 보고 오시다니…부럽부럽 >.’레이스를 뜨는 소녀’와 내셔널 갤러리에서 ‘버지널 앞에 앉은 여인’이 전부군요.
(마침 뮌헨 피나코텍에 대해 정리하던 중이라 그림 링크까지 하게 되네요 ㅎㅎ)
물론 두 작품만으로도 너무 좋았지만, 정작 보고 싶던 그의 그림은 다 다른 곳에 있었어요.
참, 이 영화도 보셨는지…소설도 좋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화면에 잘 풀어낸 영화도 꽤 괜찮았답니다. 감독은 베르메르가 다루던 빛을 제대로 이해하고 영상으로 풀어놓았더군요. 혹시나하며 걱정했는데, 결국 감동이 배가 되었던 기억이 :)
August 30th, 2005 at 4:28 pm
와,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동하는 사람도 있군요! 여자분이라 감성이 저랑은 다른가봐요. ^^;
소설이 꽤나 재미있나봐요. 흠, 여기에서는 읽질 못하겠고. 한국 돌아가면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이런, 한국 돌아가면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걸요? ^^a
August 30th, 2005 at 4:32 pm
아, 그러게말이에요. 보고 싶었던 그림을 실제로 보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아는 분만 아실거에요. 그렇죠? ^^*
와, 지난 여행 때 많은 걸 보고 오셨네요. 루브르와 내셔설 갤러리까지. 베르메르의 그림을 기억하시는걸 보면 좋아하는 화가이신가봐요. 사실 저는 화가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
링크해주신 곳에 그림에 대한 정보가 많네요. 덕분에 좋은 곳을 알게되었어요.
영화는! 구하고 있는 중이에요. 못 구하면 한국 돌아가서 DVD를 사보려고요. 윽, 한국 돌아가서 해야할 일이 또 늘었네요. ^^;
September 3rd, 2008 at 7:41 pm
세계의 미술관을 2달넘게 뉴욕의 구겐하이므프릭,누개러리,모마,맷.휘트니
그리고 상파울로마스피, 마드리드프라도,프릭,왕립,파리의 오르세,루브르,퐁피두,그리고 생페테르브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암스텔담 고흐, 국립,베르메르를찾아서 마후리츠후이스 텔프트에 최근에
베르메르기념관이 생겨 시대별 작품을 전시하며 많은 이해를 돕고 있더군요
저는 에르미타쉬에 있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가 감동이더군요
다시 떠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