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 주제 :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의 세계” One World For All (Eine Welt Fur Alle). 1974년은 UN이 정한 ‘세계인구년도’ Population Year여서 주제를 국제연합이 정함. 전 세계 77개국에서 14,000여점 이상이 출품됨.
o ‘탄광부’ : Top prize 수상 1974년 10월 1일 당시 서독 쾰른시 Kunst Halle (미술관) Music salon에서 시상식이 거행되어 대륙간 왕복 항공권 제공 초청되어 현지 시상식에서 수상. UN이 제공하는 상장과 medal, 오베리스크 상패를 받음.
o 작자의 변 :
“탄광부 !
그 얼굴은 먹구름처럼 굳게 닫혔어도 날카롭게 치켜 뜬 그 눈망울은 태양을 송두리채 꿰뚫을 무한한 energy를 내쏟고 있다. 공포와 초조로움이 서렸어도 날카롭게 치켜 뜬 그 눈망울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고 배워야 하겠다.
탄광부 !
그에게서 겸허한 인종과 끈질긴 의지를 도려내어 태양을 향해 줄곧 줄달음 치리라.
1970년 3월경 영감이 떠올라 착상했고 작은 스켓치북에 composition을 그려가며 구상하고 구성하기 시작한 지 2개월여만에 촬영에 임했으나 완성하기까지에는 2년 여가 걸렸습니다. 촬영해서 들어와 현상해 보면 모두가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번민과 고민을 하는 가운데 울기도 대여섯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정신적인 문제와 technique의 부족으로 인한 실망이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전문 사진가에게 20여회 서신을 올렸으나 어느 누구도 회신은 해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2년 여 동안 촬영한 film의 cut 수가 860여 cut에 이르렀습니다. 그 가운데 끝에서 세번째 cut로 결정해서 인화한 사진입니다.
1974년 4월 중순에 출품하면서 입상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단지 겨우 턱거리를 해서라도 입선권에 들기만 해도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입선 통보가 도착했을 때도 낙선 통보인 것으로 알고 피봉을 뜯었습니다. 심지어는 … You have won Top Prize your monochrome print Coal Miner…. 라는 대목에서 잘못 읽은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Nega film을 속히 주최측으로 보내주면 전시용 작품은 주최측에서 제작하고 nega film은 귀하가 쾰른에 체재하는 때에 직접 반환한다고 했을 때야 비로소 현실인 것으로 알고, 최고상을 차지해서 서독(당시)으로 가게 되었다고 해도 아내가 믿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무슨 말이냐? 고 하시기에 입상통보(영문으로 typing 되어 있었음)를 드렸더니 읽어 보시면서 눈물을 글성이며 ‘장한 일을 드디어 해 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쓰면서 필자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습니다.
앞에서 기술한 “작자의 변”은 실은 입상소감이었습니다만 어머니께서 ‘아범아, 그 입상소감을 들었을 때 꿈보다는 해몽이 더 좋은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씀히시면서 기쁨의 눈물을 감추셨습니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할 당시의 상황은 불행하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1974년 9월 28일 김포공항에서 오후 2시 30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할 당시의 상황을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사진협회의 모 부이사장이 PHOTOKINA가 무어요?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동양인으로는 최초의 입상이었습니다. “Top prize”를 수상한 기록은 전무후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4년은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먹음어 주는 해인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Australia의 Adelaide 국제사진전인 “Interphot ‘74″에서 입상, 입선. 당시 서독 Stuttgart의 “Hobby im Sucher” 사진 Contest 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흑백부문 입상이었으니까요.
사진은 그냥 지나다가 무엇인가 보여서 찍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무엇이 찍혔느냐? 가 아니라 무엇을 주장하겠느냐? 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제 (theme) <보통 '테마'라고 합니다만> 가 강렬하고 충격적이어야 하고 참신하고 미래 지향적인 것이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번민하고 하면서 집중적으로 탄광부의 얼굴을 close up하는 데에만 2년 여가 걸렸습니다. 따귀도 맞고 멱살을 잡히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앞에서도 기술했습니다만 번민과 고민 속에서도 대 여섯번씩이나 울었습니다. 고민과 번민 없이는 창작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0자 원고지 네모 칸에 글자를 써넣었다고 해서 문학작품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런데 그 피아노 소리를 듣고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지는 않고 피아노 소리가 들려 온다고 합니다. 형식을 갖추고 창의적인 표현을 해야만 비로소 문학작품이라고 일컫게 되고, 작곡자가 의도한 주제를 완전히 소화하고 독창적인 표현을 해야만 음악을 연주한다고 일컫게 됩니다.
독창적인 작품은 쉽게 얻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진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압니다. 음악, 미술, 문학, 영상미학, 색채미학, 철학, 논리학, 세계문예사조사, 세계사진사조사, 등등의 교양과 소양을 갖추어야만 독창적이고 참신한 작품이 창출되어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교양과 소양을 갖추어야만 작품이 생산됩니다. 사진을 하는 입장에서는 사진 mechanism을 통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길어졌습니다. 읽으시느라 매우 힘 드셨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항상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해 드리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온 사진을 몇해 전에야 다시 시작하면서 어린(?) 마음에 이것 저것 즐겁기만 했다. 조금씩 사진에 대해 진지해질 무렵 이 사진을 보았고, 사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 무엇을 찍어야할지, 무엇을 찍고 싶어하는지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요즘같이 디지털 카메라가 생활화 되면서 자신의 일상을 남기는 것도 좋아보이고, 아름다운 장면을 찍는 것도 좋아보이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내 마음이 충족 되질 않는다. 요즘 셔터를 누르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
사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요즘, 예전에 봤던 이 사진을 꺼내어 다시 보면서 또 다른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