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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에 갔었다. 아니, 결국 가지는 못했지만. 낮에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있었고, 그 때문인지 답답한 마음에 연구실 사람들의 가자는 말에 선뜻 나섰다. 요 며칠 몸이 안 좋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잠시 망설였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기분이 좀 풀릴까하여 곧 흔쾌히 따라나섰다.
저녁 7시. 하이킹을 가기에는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이제 곧 어두워 질테니까. 하지만 다들 기분이 좋은듯 했고 나역시 조금은 들떠있었다. 한시간 반쯤 갔을까 힘들게 산을 하나 넘어 장성역에 도착했다. 전에도 몇번 지나친 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잠시라도 머물러보기는 처음이었다. 9시가 다된 시각이어서인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운표형이 술만 먹고 나면 간다던 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잠시 쉰 후에 길을 떠났다. 많이 어두워진 것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마음먹고 나선길이라 자전거 패달을 더 힘껏 밟으며 나아갔다. 장성역을 지나 10분쯤 갔을까? 갑자기 뒤가 조용해 진것을 느껴 뒤돌아보니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밤길이 조심스러워 내가 앞장을 서서 달리던 참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사람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닐까 하여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찾으러 다시 돌아가 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걸까.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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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분을 그렇게 기다렸다. 사람들을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서로 길이 엇갈릴까하여 백양사로 가는 길에서 한 참을 기다렸다. 혹시 딴 길로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길이 있었나? 순간 많은 갈등이 있었다. 다시 원으로 돌아가야할까? 사람들을 계속 기다려야하나? 아니면, 계속 길을? 혹시 사고가난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쪽은 네 명이었으니 지금의 나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을 때 쯤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혼자 되보기는 오래만이라는 생각. 혼자서 어딘가를 떠나본게 얼마만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혼자서라도 가보자. 지금 생각하면 객기를 부린 것이지만 결국 난 혼자서라도 가보기로 결정했다.
다시 출발한 시간이 9시 반쯤. 장성을 지나고 나니 길 양옆으로 보이는건 논과 밭 뿐이었다. 가끔씩 보이는 모텔과 희미하게 불이 켜진 가로등 뿐. 그래도 다행인건, 정말 다행인건 하늘이 무척이나 맑았다. 그렇게 많은 별을 보기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간 이후로는 처음인거 같았다. 그 때문일까, 불이 없은 캄캄한 길을 달리면서도 나는 별로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
대학 3학년때 엠티를 가서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마음이 맞은 선배형 두 명과 저녁 12시에 팔봉산에서 춘천까지를 걸어서 온적이 있다. 그때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달도 보이지 않았었다. 희미하게 밝은 부분이 길이라는 것을 느끼며 조금씩 걸었던 기억이 난다. 5시간 거리라는 것을 알고 출발했기에 그 시간 동안만 버티면 춘천에 도착한다는 생각만으로 길을 걸었다. 두시간쯤 걸었을까, 우리가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길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5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목적지를 잃어버린 이유여서 일까. 난 그때만큼 힘들게 길을 걸어본 기억이 아직까지는 없다. 가랑비에 온 몸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기분 좋게 부르던 노래소리도 어느새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쨌든, 우린 힘들게 춘천에 도착했고. 난 우습게도 그제서야 내가 무얼 향해 살아가고 있나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남들이 다가는 대학을 (힘들게) 오고, 일년을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한 자책감으로 성실(?)하게만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이번 길은 그때와 조금은 달랐다. 난 혼자였고 하늘은 맑았으니까. 그리고 대학 3학년 때보다 난 조금은 무언가 달라져 있다고 믿었으니까. 산이 하나 더 나타났다. 이산을 넘어야하나? 난 지친 발에 힘을 주어 패달을 다시 힘껏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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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계속 자저거에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아무래도 이 산은 자전거를 타고는 못 오를거 같다. 내려서 걷다보니 쉼터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기쁜 마음에 달려가 보니 캔음료 자판기뿐.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오히려 사람이 없다는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문명의 이기. 사람이 없다는걸 편하게 느끼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고교 4학년 겨울에 혼자서 힘들었던 기억때문인지 대학에 들어와서는 난 일부러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항상 내 주위에는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사실은 내가 찾아다닌거지만) 난 그들 안에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내가 다시 변한걸까? 그렇지않아도 요즘은 자꾸만 움크려만 지는 나를 보곤한다. 무엇이 다시 나를…
힘을 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동욱이에게 좀 전에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오르막을 오르는 재미로 길을 가는 것이라고. 동욱이는 내리막이 재미있지 않냐고 웃었지만, 오르막을 오른다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글쎄, 아마도 내리막이 반드시 있을거라는 희망(?) 때문이겠지. (별 생각을 다하는군, 쩝)
계속 어두운 길이 이어졌다. 다리에 힘은 점점 없어지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 했다. 백양사까지 갈 수 있을까? 희미하게 이정표가 보인다. 백양사 까지 14km. 후~ 아직도? 시간은 열시가 넘었는데… 한 시간만 더 가면 되겠지.
오기일까? 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승부욕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어중간한 위치를 차지 했었던거 같다. 무언가 똑부러지게 잘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안하거나 못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이겨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기억이 거의 없다. 이런 나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꽤나 치명적이었다. 어떤 부류에도 확실하게 속하지 못했으니까. 나처럼 어중간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그래서 난 그 공백을 성실이라는 가면으로 메꿔보려 했던거 같다. (사실은 그리 성실하지도 못했지만.)
오늘 이 오기는 무언일까. 글쎄, 다른이들에게 백양사를 갔다왔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일까? 그런 마음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봄에 선호형하고 같이 갔을때의 정경이 계속 머리에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벚꽃이 만발한 백양사로 들어가는 밤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난 계속 그 정경을 떠올리며 길을 달렸다. 물론, 지금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백양사에 간다고 해도 오래 머물를 생각은 없었다. 한 10분이면 족할까. 내가 백양사에 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면 충분하니까. 휴~ 그런데 이 길이 끝이 있는거야? 이젠 이정표도 보이지 않고. 이제 다리에는 힘도 들어가지 않고. 슬슬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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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백양사에 가지 못했다. 한 30분 거리를 남겨놓고 자전거를 돌렸다. 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오기를 부려서라도 갔겠지만, 돌아오는 길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단 수월했다. 오면서 알았지만 장성에서 백양사로 가는 길은 거의 오르막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대부분이 조금씩은 내리막이었으니.
11시. 아마도 2시간쯤이면 원에 도착할 수 있겠지. 예전처럼 길을 잃어 힘들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한번 온길을 되돌아가는 것이기에. 사는 것도 이렇게 되돌아 가는 길이 있다면 어떨까. 길을 헤맬 걱정없이 온길을 다시 되짚으면 되니. 하지만 그런 삶이라면 별로 재미가 없겠지. 자신이 온길을 되짚는 것은 추억(혹은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추억만으로도 많이들 즐거워하고 또 때로는 그 무게에 버거워 하니까.
이젠 자전거로 달리는 시간보다 걸어가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오르막이 나타나면 이젠 아예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가 전에는 무서웠는데 이제는 반갑기까지 하고. 가끔씩 서있는 가로등이 내게는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선호형 차로 지나갈때는 별로 힘든 길이 아니었는데. 사람은 무엇이든 직접 몸으로 체험을 해봐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 수 있나보다. 이 길이 이렇게나 멀고 힘들 줄은 몰랐다.
되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이정표라도 나타나면 좋을텐데, 어두워서 그냥 지난친 것인지 내겐 보이지 않았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이 길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이정표 없는 길은 불안하기만 했다. 내가 이정표없이 많은 길을 걸어 왔음을 새삼 느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난 어떤 이정표 를 찾아 걸어 왔을까.
나름대로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버텨왔지만, 사실 난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도 지금의 나에겐 불분명하다. 후~ 예전엔 그래도 이것저것 꿈이 많았던거 같은데. 물론 대부분이 허망된 것이기는 했지만, 꿈을 꿀 수 있던 때에는 행복했었다. 지금은 좀더 현실적이 된 것이겠지만, 그 꿈 많던 시절이 그리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언젠간 이루겠다는 인생의 목표라는 것도 이젠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에겐… 무엇보다 이정표가 필요한 때인거 같다. 누가…
새벽 1시가 다 되어갈 즈음에 드디어 비아로 들어섰다. 후아~ 살았다. 느려진 발에 다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아로 들어설때 배가 고팠는지 갑자기 떡볶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께서 우리 형제가 갈 때마다 해주시던 떡볶기가. 하~ 다음순간 난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외할머니는 작년 11월에 돌아가셨다. 이럴수가. 난 사실 지금까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실감하고 있지 못했다. 좀 떨어져 사셨고 방학때나 볼 수 있었으니. 그런데, 이제서야 기껏 떡볶기가 먹고 싶어서 할머니를 떠올렸다는 것이 할머니께 무척이나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런 정도였나. 할머니를 그리워할 자격이 내겐 없는것 같았다. 글쎄,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아마도 할머니의 따뜻한 애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다 큰 손자 손녀에게도 어릴때와 다름없이 떡볶기를 해 주시던 할머니. 우린 언제나 맛있게 먹었고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면서 즐거워 하셨다. (훗~ 어린애처럼 먹는 얘기를 하려니 쑥쓰럽구만.)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남긴 애정, 사랑,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나보다. 다른 물질적인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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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돌아오니 나머지 네명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으~ (열 받아). 나 혼자서 잘 올 줄 알고 모여서 술까지 마셨단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 덕에 좋은 여행을 했으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할까. 혼자서 떠나야했다면 나서기 쉬운 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뭏든 좋았다. 눈물이 날 만큼 많았던 별도 좋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서 달리는 것도 좋았고, 가끔씩 보이는 가로등도 좋았고, 으르렁 거리며 곁을 지나던 자동차 불빛도 좋았다.
그와 헤어진후 지난 몇년간 너무 내 마음을 닫아 둔 채로 살아왔나보다. 이렇게나 떠오르는 생각이 많은 걸 보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며 살아야겠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왠지 이번 가을에는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대로 될까?) 참, 새 차(?)를 구입하면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다음에는 꼭 성공해야지.
(1997년 여름 대학원 석사 1년에 쓴 글입니다. 한참 생각이 많을 때였죠. ^^)
May 25th, 2004 at 11:46 pm
오빠~ 재밌게 읽었어요!! 꼭 제가 자전거타고 백양사근처까지 갔다오는 느낌이 들 정도루여^^ 근데 같이 갔던 4명 누구에욧!! 그냥 오다뉘~^^
May 28th, 2004 at 7:19 pm
그때 나를 버려두고 간 사람들을 고발합니다~! ^^;
농담이구. 뭐, 덕분에 혼자서 좋은 경험을 했으니 고마울따름이지.
언제 지호랑, 이씨아저씨랑 해서 함께 가자꾸나.
이번 여름도 좋고, 아님 시원한 가을도 좋고.
지호가 싫어하겠지만, 가서 맛있는 산채정식 먹는다고 하면 갈지도 몰라. 그치? ^^
May 30th, 2004 at 6:34 pm
산채정식으로는 좀 힘들겠는데요..^^
지호입맛이 아직 어려서 그런거 맛있는줄 몰라요^^
혹시 산에서 특이한 멧돼지고기같은거 파는데있다고하면 갈거에요..ㅋㅋ^^
May 31st, 2004 at 3:51 pm
그렇다면 백양사에서 멧돼지 잡으러 뛰어다녀봐야지. ^^;